검색결과37건
프로야구

[IS 피플] 숱한 '고비' 넘겼다, 그래서 더 값진 '1군' 천재환

외야수 천재환(29·NC 다이노스)은 숱한 고비를 넘겨 마침내 프로야구 '1군 멤버'가 됐다.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엔 인생이 풀리는 거 같다"며 웃었다.천재환은 NC의 '4월 히트 상품'이다. 월간 21경기에서 타율 0.313(67타수 21안타)를 기록했다. 9경기 연속 안타, 4경기 연속 멀티 히트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득점권 타율도 0.353로 수준급. 지난해 기록한 안타 5개가 통산 1군 성적의 전부였다는 걸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자 변화다. 옆구리 부상으로 이탈한 제이슨 마틴의 공백을 기대 이상으로 채웠다.천재환은 "처음엔 생각이 많았다. 결과가 좋아도, 그렇지 않아도 쫓기는 느낌은 똑같았다. 2군에서 하던 마음가짐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SSG 랜더스와 2차전(4월 15일·선발 커크 맥카티)부터 그런 느낌이 확 생겼다"고 말했다. 화순고를 졸업한 천재환은 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미지명됐다. 야구 인생 첫 위기였다. 하지만 일찌감치 고려대 진학이 예정돼 큰 타격은 없었다. 때마침 내야수(3루수)였던 포지션을 투수로 바꿀 계획도 있었다. 그런데 대학 1학년 때 입스(Yips·두려움 때문에 발생하는 불안 증세)가 왔다. 스트레스 탓에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해 2학년 때 포지션을 다시 내야수로 바꿨다. 그리고 201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다시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천재환은 "대학교 때 지명이 되지 않은 건 충격이었다. 드래프트 전날에도 지명을 한다고 얘기한 구단 관계자도 계셨는데 그렇게 됐다"며 "처음엔 원망 아닌 원망과 후회도 많이 했다. 사실 야구를 포기했었다"고 말했다.2016년 8월에 열린 드래프트에서 낙방한 천재환은 방황했다. 두 달 정도를 쉬고 있을 때 대학교 코치가 NC 입단 테스트를 권유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입대 서류를 준비하던 천재환은 8~9명과 경쟁한 끝에 육성선수로 NC에 입단했다.고비는 계속됐다. 2018년 5월 경기 중 공에 맞아 손목이 골절된 것이다. 구단은 재활 치료 후 입대를 원했지만, 선수의 생각은 달랐다. 치료받으면서 병역(사회복무요원)을 이행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군 보류 명단에서 빠졌다. 천재환은 2020년 6월 전역 후 입단 테스트를 거쳐 NC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그는 "손목 골절로 핀을 박았는데 핀을 빼면 그 시즌을 뛸 수 없었다. 재활 치료를 군대에서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최대한 빨리 군대 가려고 병무청을 찾아가기도 했다"며 "장애인 복지 시설에 잠깐 있다가 어르신들을 모시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했다"고 돌아봤다.천재환은 지난 2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의 '타자 최우수선수(MVP)'였다. 팀 내 최다인 연습경기 데일리 MVP를 총 3번이나 차지했다. 캠프 연습경기 타율이 0.421(19타수 8안타). 하지만 시범경기 타율이 0.071(28타수 2안타)로 뚝 떨어졌다. 개막전 엔트리 승선이 불발돼 다시 잊힌 존재로 1군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마틴의 이탈로 잡은 기회를 잘 살리고 있다.숱한 고비를 극복한 그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천재환은 "난 표본이 없지 않나. 그래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며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니더라도 NC 하면 떠오를 수 있고 믿음이 가는 선수, 그런 선수가 됐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창원=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3.05.04 05:53
프로야구

[IS 피플] 장타 욕심 버린 '10라운더' 문성주, 밥상 차리는 '만능키'

'10라운드의 기적' 문성주(26·LG 트윈스)가 장타 욕심을 버렸다.문성주는 지난해 LG가 발견한 '보물'이다. 정규시즌 106경기에 출전한 문성주는 타율 0.303(327타수 99안타)로 맹활약했다.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지만, 출루율(0.401)과 장타율(0.422)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격 지표가 커리어 하이였다.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LG에 신바람을 일으켰다.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문성주의 타율은 8월까지 0.336(274타수 92안타). '장외 타격왕' 경쟁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9월 월간 타율이 0.149(47타수 7안타)로 크게 떨어졌다. 부족하다고 생각한 장타를 의식한 순간, 타격 지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했다. 장타를 머릿속에 그리자 콤팩트한 스윙이 사라졌다. 스윙 궤적이 커지니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정타가 잘 나오지 않았다. 3할 타율로 시즌을 마쳤지만 결과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다.지난 2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도 문성주는 장타를 의식했다. 방황하던 문성주의 길잡이가 된 건 염경엽 LG 감독과 이호준 타격 코치였다. 코칭스태프와 상의한 문성주는 스윙 궤적을 크게 하는 것보다 배트 스피드를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타격 시 원심력을 이용한 배트 스피드로도 충분히 장타를 생산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단점을 보완하려다가 장점마저 사라지는 최악의 상황도 고려해야 했다. 장타를 의식하지 않으니 타석에서 더 단단해졌다. 문성주는 올 시즌 첫 8경기에서 타율 0.414(29타수 12안타)를 기록했다. 리그 타격 5위, 출루율(0.514) 4위, 최다안타 2위다. 타석당 투구 수가 4.24개로 LG 타자 중 가장 많다. 테이블 세터로 출전, 투수를 괴롭히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선발 라인업을 수시로 바꾸는 염경엽 감독이지만 유독 2번 타순은 고정에 가깝다. 그만큼 문성주를 향한 팀 내 신뢰가 두텁다.문성주는 "장타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 그 생각은 안 한다. (큰 타구는) 형들이 쳐줄 거라고 생각하고 난 많이 살아나가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더 좋은 배팅이 나오는 거 같다"며 "솔직히 장타를 생각하다 보면 밸런스가 깨진다. 지난해 마지막에 그런 영향도 조금 있었는데 올해는 흔들리지 않고 해보겠다"고 말했다.LG는 외야 경쟁이 치열하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 김현수와 박해민은 물론이고 '출루왕' 홍창기가 버틴다. 외국인 타자 오스틴 딘의 주 포지션도 외야라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많지 않다. 강릉영동대를 졸업하고 2018년 신인 2차 10라운드(전체 97순위)에 뽑힌 문성주는 기회의 소중함을 잘 안다. 조금씩 팀 내 입지를 넓혀가고 있지만 안심하지 않는다. 그는 "(외야 경쟁이 치열한 만큼) 내가 나가고 싶다고 해서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감독님이 믿고 내보내 주시니까 거기에 맞게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웃었다.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3.04.11 00:01
프로야구

[IS 인터뷰] 노시환 깨운 이대호·박병호 한 마디 “삼진 겁내지마”

성장통을 겪은 노시환(22·한화 이글스)이 다시 한번 날갯짓을 준비한다. 거포 선배들의 조언 덕분이다. 노시환은 리빌딩 중인 한화 타선의 미래이자 현재다. 지난 2019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지명된 그는 당시 최고의 파워히터 유망주로 꼽혔다. 지난해에는 그 잠재력을 터뜨렸다. 타율 0.271 18홈런 84타점을 기록했고, 출루율(0.386)과 장타율(0.466)을 합친 OPS도 0.852로 뛰어났다. 부상으로 출전 경기 수(107경기)가 적었지만, 풀 시즌을 소화했다면 25홈런과 100타점도 가능한 페이스였다. 당시 노시환은 "과거에는 나도 내가 공을 못 보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거포를 지향하면서 콘택트나 타율을 개선하지 않았다"며 "이제는 나만의 존을 설정하고 계획을 세워 타석에서 싸우는 법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그랬던 그가 올 시즌 부진했다. 타율은 0.281로 올랐지만, 홈런은 6개뿐이다. 출루율과 장타율이 모두 떨어졌다. 2021년 노시환을 있게 해준 '타석에서 싸우는 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노시환은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시즌 초) 삼진을 워낙 많이 당하다 보니 안 당하려고 연구를 많이 했다”며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히팅 포인트가 뒤로 왔다. 그러면서 점점 장타가 사라졌고 선구안도 흔들렸다”고 돌아봤다. 히팅 포인트가 뒤로 가면서 타구의 방향도 바뀌었다. 당겨친 타구 비율이 41%로 지난해(50.2%)에 비해 크게 줄었다. 노시환의 고민은 다른 홈런 타자들이 풀어줬다. 노시환은 “박병호(KT 위즈) 선배님의 인터뷰를 보니 '홈런 타자는 삼진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하셨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돌아보니 나성범(KIA 타이거즈) 선배님도, 최정(SSG 랜더스) 선배님도 삼진이 많았다"며 "그동안 난 삼진을 먹지 않으려고 했다. 박병호 선배님 인터뷰를 보며 내가 (삼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경기 중 1루에서 선배님을 뵈면 (타격 비결을) 많이 여쭤봤다”고 했다. 경남고 선배이자 롯데 자이언츠 4번 타자였던 이대호도 힘이 됐다. 노시환은 지난 9월 대전에서 열린 이대호 은퇴 투어 때 “이대호 선배님이 조언해주셨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당시 콘택트하기 너무 어려워 혼란스러울 때였다. 시즌 중인데도 타격 폼을 바꿔볼 정도로 방황했다. ‘너무 혼란스럽고, 방망이도 잘 안 맞는다’고 선배님께 말씀드리니 찬찬히 설명해주셨다"며 "스타일을 바꾸지 말라고 하셨다. 굳이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려고 하면 절대 잘 칠 수 없다. 장점인 힙턴과 배트 스피드를 살려서 쳐라’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노시환은 “이대호 선배님은 히팅 포인트를 완전히 앞에 두고 가볍게 치시는 것 같지만, 오히려 본인은 끝까지 보고 치신다고 하셨다"며 "비시즌 운동을 부산에서 하는데 (이대호) 선배님에게도 도움을 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노시환은 “올해 팀이 어려울 때 한 달 정도 부상으로 빠져 팀원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중심타자 역할도 해주지 못했다”며 “한화 중심타선에는 (김)인환 형도 있고 채은성 선배님도 오셨다. 시즌 중 채은성 선배님께 '한화로 오시면 안 됩니까' 했더니 '불러줘야 가지'라고 하셨는데 진짜 오셨다. 많이 보고 배우겠다"며 "(정)은원 형이나 나, 또 다른 어린 선수들도 많다. 우리가 투지 있는 모습을 더 보여주면 한화가 강팀이 될 수 있고, 선배님들을 잘 따라갈 수 있다. 은원 형과도 ‘우리가 한 발짝 더 뛰고 한 번 더 열심히 해보자’고 이야기한다. 내년에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뛰겠다”고 다짐했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2.12.26 09:10
스포츠일반

[이석무의 파이트 클럽] 박현성 “이름 같은 그분 별명처럼 ‘불사조’ 파이터 되겠다”

2005년 박현성이라는 인물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전신 화상을 입어 불편한 몸에도 포기하지 않고 복싱과 종합격투기 선수로 활약하며 감동스토리를 썼던 주인공이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불사조’였다. 그는 안타깝게 2014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17년이 지났다. 2022년 10월 필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종합격투기 선수를 만났다. 종합격투기 경량급 ‘신성’으로 떠오른 박현성(27)이다. 긴 시간을 사이에 두고 이름이 같은 두 명의 종합격투기 선수를 만나 인터뷰하는 기분이 묘했다. ‘젊은’ 박현성의 첫인상은 스마트하고 날렵해 보였다. 그는 56kg 한계인 플라이급에서 최근 무섭게 성장하는 중이다. 통산 전적 6전 6승을 기록 중이다. 박현성은 2018년 더블지FC에서 데뷔해 5연승을 질주했다. 5경기 가운데 데뷔전을 제외하고 4경기에 KO나 서브미션 승리였다. 국내에서 승승장구하던 박현성은 더 큰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UFC 정식 계약이 걸린 ‘로드 투 UFC’ 플라이급 토너먼트에 뛰어든 것.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8강전에서 제레미아 시레가(인도네시아)를 1라운드 KO로 제압했다.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하지만 격투기 얘기가 시작되자 이내 진지해졌다. 그는 “격투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술도 엄청 많이 마시고 담배도 많이 피우고 그냥 막 살았다”며 “그런데 격투기를 시작하고 나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열정이란 것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아무 생각 없이 방황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격투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했다. 학창 시절에는 담을 쌓던 공부를 시작했다. 체육관에서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발전하고 성장하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박현성은 “격투기를 통해 육체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도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며 “한편으로는 세상이 강한 자는 정말 많고 쉬운 것은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관계자들은 박현성이 UFC에 진출한다면 크게 성공할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기대한다. 일단 플라이급이라는 체급은 동양인이 서양인에게 불리할 게 없다. 과거 유명우나 장정구 같은 한국 위대한 프로복싱 챔피언들도 50kg 안팎 경량급이었다. 게다가 박현성은 단점이 없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타격과 그라운드 모두 능하다. 그가 거둔 6승 가운데 타격에 의한 KO승이 3승, 관절기에 의한 서브미션이 2승이다. 경량급 선수는 펀치나 킥이 약할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박현성에게는 해당 없다. 그의 송곳 같은 타격에 상대 선수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박현성은 오는 23일 아랍에미리트 에티하드 아레나에서 토너먼트 4강전을 치른다. 상대는 토프노이 키우람이라는 태국 선수다. 11전 8승 3패 전적을 가진 토프노이는 태국 선수답게 무에타이를 바탕으로 타격 능력이 뛰어나다. 8승 중 5승이 타격에 의한 KO승이었다. 공교롭게도 토프노이는 박현성이 태국 전지훈련을 했을 때 당시 훈련 파트너이기도 했다. 체급도 비슷하다 보니 서로 친하게 지냈다. 운명의 장난처럼 UFC 진출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박현성은 “함께 훈련했기 때문에 상대 선수가 어떤 스타일인지 잘 알고 있다”며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더 많기 때문에 장점을 잘 활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본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인터뷰 말미에 ‘젊은’ 박현성에게 ‘불사조’ 박현성 관장에 대해 살짝 운을 띄웠다. 그도 이름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느닷없이 ‘형님, 저 OOO에서 함께 생활했던 OOO입니다’라고 하더란다. 이젠 그런 경험이 어느덧 자연스러워졌다. “이름이 같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분에 대해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인연은 없지만, 저도 그분 별명처럼 ‘불사조’처럼 싸우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무조건 이기고, 또 이겨서 대한민국 제1호 UFC 플라이급 파이터가 되겠습니다” 2022.10.20 12:07
야구

[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⑤] '악마의 2루수' 정근우

정근우(40)의 별명은 '악마의 2루수'다. 안타라고 여긴 타구도 어느새 쫓아가 잡아낸다. 얄미울 정도로 수비를 잘한다고 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일간스포츠가 선정한 40주년 올스타 2루수로 정근우가 선정됐다. 세대별 야구인 10명씩 총 40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정근우는 22표를 획득, '악바리' 박정태(14표)를 제쳤다. 정근우는 2020년 11월 은퇴식에서 "역대 최고 2루수는 내가 맞는 것 같다"면서 "'악마의 2루수'라는 애칭처럼 되고자 많이 노력했다. 키를 넘는 타구는 몰라도 옆으로는 타구를 빠뜨리지 않겠다는 자세로 뛰었다"고 말했다. '선배 2루수'도 이를 인정한다. 정근우는 2007년 잠시 유격수로 뛴 적 있다. 당시 그와 키스톤 콤비를 이룬 정경배 SSG 랜더스 타격코치는 "정근우를 따라갈 수 있는 2루수가 현재 성적으로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철인' 최태원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는 "스로잉(송구)이 안 좋아 보일 수 있는데 어깨가 강했다. 또한 수비 범위가 엄청나게 넓었다. 견실하면서 재치 있는 플레이가 돋보였다"고 칭찬했다. 정근우는 2000년 캐나다 애드먼턴에서 열린 제19회 세계 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였다. 추신수(SSG)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김태균(은퇴) 등과 대표팀 주축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체격(1m 71㎝)이 작다는 이유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고려대에 진학했다. 고려대 선배였던 박용택은 정근우를 "쥐똥만 한 녀석이 운동을 열심히 했다. 승부욕도 엄청났다. 예쁜 후배였다"라고 회상했다. 2005년 SK(현 SSG) 2차 1라운드로 입단한 정근우는 김성근 감독을 만나 '최고 2루수'로 성장했다. 정근우는 "김성근 전 감독님이 치는 펑고를 너무 많이 받았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훈련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그는 2007년과 2008년, 2010년 등 SK에서 세 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꼈다. 고등학교 때 입스(심리적 요소로 공을 정확히 던지지 못하는 증상)를 느꼈다. 대학 때, 그리고 프로 입단 후까지 무려 세 번이나 입스가 왔다. 많은 선수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하지만, 정근우는 끝내 이겨냈다. 팔꿈치 수술도 세 번이나 받았다. 당시 의사가 "이런 팔로는 야구를 못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 정근우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과 싸워 이겼다. 공격과 주루도 뛰어났다. 프로 통산 1747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2(1877안타) 121홈런 722타점을 기록했다. 정확성도 뛰어났지만, 작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장타력까지 갖춘 2루수였다. 끝내기 안타도 16개(KBO리그 최다 기록)를 때려낸 바 있다. 통산 371도루를 기록했고, 역대 최초로 11년 연속 20도루를 찍었다.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3회(2006년, 2009년, 2013년), 득점왕 2회(2009년, 2016년)를 수상했다. 키움 히어로즈 김혜성은 "공수가 완벽했던 2루수"라고 말했다. 국가대표로도 맹활약한 정근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5년 WBSC 프리미어12 우승 등에 기여했다. 대표팀 통산 성적은 40경기 타율 0.324 10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843이다. 2021년 한국시리즈 MVP(최우수선수)를 수상한 KT 위즈의 2루수 박경수는 "정근수 선배님이 대표팀에서 보여준 좋은 플레이와 임팩트는 2루수 중에서도 '넘사벽'이라고 생각한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정근우는 2014년 한화 이글스와 4년 총 70억원의 FA(자유계약선수) 계약으로 이적했다. 2+1년 총 35억원의 두 번째 FA 계약 후에는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했다. 나중에는 외야수와 1루수로 나섰다. 2019년 말 2차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근우는 '2루수'로서 마지막 기회를 얻었고, 결국 1년을 더 뛰고 은퇴했다. 그는 "포지션 변경에 방황하면서 여러 고민도 했는데 (LG로 옮겨) 다시 한번 2루수로 뛸 기회를 얻었다. 감사드린다. 어떤 선배가 '한 자리를 10년 지키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난 '10년 넘게 할 거야'라고 다짐했는데, 2루수로 은퇴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KBO리그 역사상 가장 많이 2루수로 출전한 선수가 바로 그다. 김경기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2루수는 꾸준히 활약하기 힘든 포지션이다. 어떤 2루수가 팀에 가장 큰 도움을 줬을까 생각해보니 정근우가 떠올랐다. 2루를 대표하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양상문 전 롯데 감독은 "정근우는 공수 능·력과 파이팅을 모두 보여줬다. 이상적인 2루수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 팀 공헌도도 높았다"라고 평가했다. 김종국 KIA 타이거즈 감독은 "같이 뛰어본 선수 중에는 정근우가 가장 좋은 2루수다. 지도자의 눈으로 봐도 그렇다. 공·수·주 모두 독보적이었다. 근성도 뛰어났다. 신체 조건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를 이겨냈다"라고 말했다. 2020년 신인왕 KT 소형준은 "정근우 선배님은 수비도 좋았지만, 타석에서 상대 배터리와 야수진을 흔들 수 있는 타자였던 것 같다. 투수 입장에서 상대하기 힘들었다"라고 했다. 지난해 신인상을 받은 KIA 이의리는 "악바리 같은, 근성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표현했다. 이형석 기자 2022.01.16 09:00
야구

[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②] '신(神)이라 불린 사나이' 양준혁

자신의 이름 앞에 '신(神)'이라는 단어가 붙는 프로야구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 ‘양신(神)’ 양준혁(53)이 일간스포츠가 선정한 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 외야수 부문 한 자리를 차지했다. 현역 시절 등 번호 10번을 달았던 그는 삼성의 '10번 대선배' 장효조와 함께 40주년 올스타 명단에 이름을 올려 의미를 더했다. 양준혁은 이승엽과 함께 라이온즈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대구상고와 영남대를 졸업한 그는 1992년 신인 2차 1순위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지명됐다. 대구 토박이로 누구보다 고향 팀 삼성 입단을 바랐지만 삼성은 그해 1차 지명 권리를 왼손 투수 김태한에게 사용했다. 양준혁은 쌍방울의 지명을 거절, 상무 야구단에 입단했다. 그리고 1년 뒤 1차 지명으로 꿈에 그리던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전설의 시작이었다. 1993년 프로야구 신인왕 레이스는 역대급으로 평가받는다. 해태 타이거즈 유격수 이종범이 타율 0.280(475타수 133안타) 16홈런 53타점을 기록했다. 도루까지 73개를 성공, '바람의 아들'로 불리며 리그를 강타했다. 하지만 최종 승자는 양준혁이었다. 그는 타율 0.341(381타수 130안타) 23홈런 90타점으로 가공할만한 화력을 보여줬다. 타격·장타율·출루율 1위, 홈런·타점 2위에 오르며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홈런·타점왕을 차지한 팀 선배 김성래에 밀렸지만, 최우수선수(MVP)에 도전할 만큼 흠잡을 곳이 없었다. '괴물 타자' 양준혁은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1994년 타점왕, 1995년에는 2년 만에 20홈런 고지를 다시 밟았다. 1996년에는 삼성 타자로는 사상 첫 20-20 클럽에 가입했고 개인 통산 첫 번째 타격왕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전천후 개인 성적을 앞세워 3년 만에 MVP에 재도전, 당대 최고의 투수 구대성(당시 한화 이글스)을 위협했다. 구대성은 그해 55경기에 등판, 18승 3패 24세이브 평균자책점 1.88을 기록했다. 수상의 영예는 구대성의 차지였지만 그와 경쟁했다는 것만으로도 양준혁에게는 성공적인 1년이었다. 개인 첫 번째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1999년 선수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지역 라이벌 해태로 전격 트레이드된 것이다. 하지만 기자회견을 자청,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미국 진출 의사를 밝히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짧은 시간 방황을 끝내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심정으로 방망이를 다시 잡겠다"고 말한 뒤 타이거즈에 합류했다. 각성한 양준혁은 투수에게 위협 그 자체였다. 그해 131경기에서 타율 0.323 32홈런 105타점으로 개인 한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홈런과 득점, 타점, 최다안타를 비롯한 공격 대부분의 지표에서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해태와의 인연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9시즌이 끝난 뒤 한국프로야구선수협(선수협) 구성 선봉에 서며 구단에 미운털이 박혔다. 우여곡절 끝에 2000년 3월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돼 광주를 떠났다. 잠실에 입성한 양준혁은 2년 동안 연평균 92타점을 기록, 제 몫을 다했다. '선수협 주동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선수 생명에 위협을 느끼기도 했지만 2002년 1월 총액 27억2000만원에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하며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양준혁은 2002년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132경기 타율이 0.276에 머물렀다. 데뷔부터 매년 이어오던 3할 타율의 명맥이 끊겼다. 양쪽 어깨에 물이 차 제대로 된 타격이 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했다. 훈련 방법, 타격 폼, 생각마저 모두 바꿨고 이 과정에서 전매 특허 '만세 타법'이 탄생했다. 폴로스루 때 왼손을 놓은 방법인데 자칫 타격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연습을 통해 몸에 익혔다. 양준혁은 2003년 개인 한 시즌 최다인 홈런 33개를 폭발시키며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양준혁의 이름 앞에는 '기록의 사나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2007년 6월 9일 KBO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 2000안타 고지를 밟았다. 2009년 5월 9일에는 통산 341번째 홈런을 터트려 장종훈(당시 한화 이글스)이 보유하고 있던 개인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다. 골든글러브 8회 수상이라는 금자탑도 쌓았다. 그는 2010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은퇴 경기에서도 내야 땅볼에 1루까지 전력으로 질주,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매 경기 최선을 다한 야구에 대한 그의 진심이었다. 등 번호 10번은 22번(이만수) 36번(이승엽)과 함께 삼성 구단의 영구결번이다. 서용빈 KT 위즈 2군 감독은 "양준혁 선배는 장타, 콘택트, 기록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역대 최고 외야수로 빼놓을 수 없다"고 했고, 박경수(KT)는 "프로야구에 한 획을 그은 레전드 타자"라고 극찬했다.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했던 정경배 SSG 랜더스 코치는 "장효조 선배와 마찬가지로 현역 선수와 비교했을 때 양준혁 선배의 기록도 가치가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혜성(키움 히어로즈)은 "항상 1루로 전력 질주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며 40주년 올스타 외야수로 양준혁의 이름을 적었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2.01.09 08:00
야구

오랜 타격 방황을 끝내고 돌아온 LG 이형종 "돌파구 찾은 느낌"

LG 이형종(32)이 오랜 타격 방황을 끝내고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LG 외야진은 개막 전에 '빅5'로 불릴 만큼 탄탄한 선수층을 자랑했다. 선발 세 명이 필요한 외야수 라인업에서 선발급 자원이 다섯 명이나 된다는 뜻이다. 김현수, 이천웅, 채은성, 이형종, 홍창기까지 라인업이 쟁쟁하다. 외야에 선발 출전하는 셋을 제외하고 나머지 한 명이 지명타자로 나서도 또 다른 한 명은 벤치에서 대기를 해야 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현재까지 LG에서 규정 타석을 채운 외야수는 김현수와 홍창기, 둘밖에 없다. 나머지 셋은 부상과 부진이 이어졌다. 이형종은 부진했던 외야수 '빅5' 중 하나다. 그는 전반기 타율 0.218로 극도의 부진에 시달렸다. 49경기에서 홈런 8개를 쳤지만, 정확성이 너무 떨어졌다. 이런 부진 탓에 출전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1군에서 몇 차례 제외됐다. 도쿄올림픽 휴식기를 알차게 보낸 이형종은 후반기 들어 달라졌다. 8월 10일부터 9월 6일까지 타율 0.315를 기록했다. 전반기 대비 홈런(8개→1개)은 줄었지만, 장타율(0.429→0.444)과 출루율(0.347→0.373)은 올랐다. 특히 전반기 0.146으로 꽉 막혔던 득점권 타율이 후반기 0.294로 크게 향상됐다. 이제야 웃음을 되찾은 이형종은 "후반기에 조금 나아진 것 같다. 돌파구를 찾은 느낌이다"고 말했다. 이형종은 슬럼프 탈출을 위해 이것저것 다 시도해 봤다. 그는 최근까지 콧수염과 턱수염을 길렀다. 수염을 기른 건 생전 처음이었다. 그는 "원래 수염 기르는 것을 안 좋아하는데 그냥 잘 안 되니까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놨다. 또 독서도 하고, 음악도 들었다. 이형종은 이를 "자아 성찰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부진한 성적에 대한 아내의 꾸짖음 속에 러닝머신 위를 열심히 달렸다. 이형종은 "그라운드에서 많이 뛰니까, 평소에 걷거나 뛰는 것을 싫어한다. 지난달부터 아침에 훈련장에 와서 러닝머신을 타보니 '할 만하네'라고 느꼈다. 싫어하는 것도 해보니 괜찮더라. 나에게 '고생 많이 했다'고 칭찬해줬다"고 말하기도 했다 . 이형종은 야구 열정과 욕심이 많은 선수다. 2007년 서울고 3학년 당시 대통령배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 끝내기 안타를 맞고 마운드에서 펑펑 울어 한때 '눈물 왕자'로 불렸다. 강한 승부욕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는 이후 순탄치 않은 야구 인생을 보냈다. 2008년 LG 1차 지명 투수로 입단한 이형종은 2경기에 등판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골프 선수로 전향했다가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대신 투수가 아닌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로 역할을 바꿨다. 우여곡절이 많은 야구 인생을 보낸 그는 매년 조금씩 성장했다. 레그킥을 장착하고, 스윙 메커니즘에 변화를 줬다. 치열한 외야 경쟁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갖추기 위해 장타력 장착을 목표로 구슬땀을 쏟았다. 2019년 팀 내 홈런 2위(13개), 지난해에는 3위(17개)였다. 올 시즌에는 이런 부담감이 스스로를 짓눌렀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고, 사령탑 교체로 인해 바뀐 팀 색깔에 적응을 못 했다. 이형종은 "스스로 조급해하고 나를 아끼지 않는 느낌들이 있었다. 올해 유독 심하게 나를 몰아붙였다"고 뒤돌아봤다. 자신과 싸움에서 길고 긴 어두운 터널에 들어갔다가, 후반기 들어서야 막 헤쳐나온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중심타자 채은성이 부상에서 돌아와 LG 외야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형종이 부진한 사이에 '거포 유망주' 이재원이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형종으로선 자신의 진가를 발휘해야 한다. 시즌 타율은 아직 2할 4푼대로 낮은 편이나, 장타력만큼은 4할 중반대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이형종은 "나이로는 베테랑이지만 타자로서는 1군 6년차다. 지금은 보여줄 나이인데 올해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고, 한 단계 더 올라가고 싶었다"며 "자존감이나 컨디션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반전을 기대했다. 이형석 기자 2021.09.08 06:10
야구

[이형석의 리플레이] "공 던져볼래?" 입원 중이던 나균안의 야구 인생을 바꾼 전화 한 통

롯데 투수 나균안(23). 2020년 3월 그는 나종덕이었다. 포지션은 포수였다. 손목 수술 후 병원에 입원 중이던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리고 그의 야구 인생을 확 바꿔 놓았다. 당시 나균안은 호주에서 한창이던 스프링캠프 연습 도중 타석에서 스윙하다 왼 팔목에 이상을 느꼈다. 현지 병원 진단 결과 왼 팔목 유구골(갈고리뼈) 골절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같은 소식. 2년 동안 안방에서 고생했고, 트레이드를 통해 경쟁자 지성준(현 지시완)까지 합류한 터라 절치부심하며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균안은 할 수 없이 캠프에서 중도 귀국해 수술대에 올랐다. 병원 입원 중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발신인은 롯데 성민규 단장. 성 단장은 대뜸 "공 한번 던져볼래?"라고 제안했다. 본격적인 투수 전향을 의도한 건 아니었다. 재활 기간 배트를 휘두를 수 없으니 기분전환 겸 가볍게 공을 던져보라는 것이었다. 나종덕은 흔쾌히 답했다. "네." 사실 '포수 나종덕'은 마음고생이 컸다. 2017년 롯데 2차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입단했다. 1·2차 지명을 통틀어 포수로는 가장 높은 순번이었다. 2018년 강민호가 삼성과 FA(자유계약선수) 계약으로 팀을 떠나면서, 롯데 안방은 무주공산이나 마찬가지였다. 프로 2년 차 나균안이 대체 1순위였다. 2018년에도, 2019년에도 롯데 포수 중 가장 많이 마스크를 썼다. 하지만 주전으로 완벽하게 도약하지 못했다. 타격(2018~19년, 210경기 타율 0.124)도 약했지만, 포수로서 안정감이 떨어져서다. 단지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2019년 롯데가 기록한 폭투는 103개. 리그 평균 59개를 훌쩍 넘겼다. 투수 영향도 있었으나, 롯데 포수진의 기본기 부족이 지적됐다. 팀 성적도 2017년 정규시즌 3위에서 2018년 7위, 2019년 꼴찌로 곤두박질치면서 포수진을 향한 따가운 시선은 계속됐다. 나균안을 괴롭힌 건 외부의 시선과 비난이 아니다. 자신에게 큰 실망감 때문이다. 그는 "내가 '왜 이것 밖에 안 되지' '원래 이런 선수가 아니었는데'라며 자책했다. 그래도 유망주 포수로 입단했는데 제대로 된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하고 구단과 팬에 정말 미안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강민호)가 있었던 자리가 엄청나게 크더라.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임했는데, 쉽지 않고 힘들었다. 그걸 이겨내지 못했다. 내가 부족했다. 인정한다"라고 돌아봤다.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면서도 투수 전향을 확정짓지 않고, 미련이 남은 포수로 더 뛰기로 했다. 성민규 단장이 기억하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렇다. "처음부터 나균안의 투수 전환을 고려했다. 공을 던지는 모습이나 어깨를 보면 투수 자질이 엿보였다. 하지만 포수로 성장 중인 선수에게 함부로 이를 제의할 수 없었다. 계속 찬스를 엿봤다. 캠프에서 부상으로 재활 기간을 갖게 돼 '빌드업을 할 겸 (마운드에서) 공을 한 번 던져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재활 기간 막바지 나균안은 포수로 더 뛰고 싶어 했다. 실제 퓨처스리그에 포수로 뛰며 홈런도 쳤다. 가장 중요한 게 선수 의견이고, 현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설득 과정이 필요해 보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다시 물었다." 나균안이 성 단장에게 답했다. "포수로서 자신감보다 마운드에서 자신감이 더 큽니다. 투수로 전환하겠습니다." 성민규 단장의 깜짝 제안은 나균안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중학교 때 마운드에 오른 적은 꽤 있었지만, 고교 시절에는 전혀 없었다. 그는 2020년 6월 투수 전향과 함께 나종덕에서 나균안으로 개명하고, 퓨처스리그에서 착실히 선발 수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2군 15경기에 등판해 65⅔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3.29로 합격점을 받았다. 올 시즌에는 선발 투수로 투구 이닝을 늘려가며 호투했다. 2021년 5월 2일, 나균안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투수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사흘 뒤인 5일 홈 사직 KIA전에 등판해 본격적인 새 출발을 알렸다. 첫 이닝 아웃카운트 3개를 모두 내야 땅볼로 처리, 깔끔하게 출발했다. 그는 "장내에 내 이름이 소개됐고, 팬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들렸고 몸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올라왔다"라고 회상했다. 5월 15일 KT전에선 5이닝 4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 요건을 갖췄으나, 불펜진의 난조로 첫 승 기회를 놓쳤다. 이어 1일 고척 키움전에서 6⅔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롯데의 6연패 탈출을 이끈 이는 투수 전향 1년도 채 안 되는 그였다. 1~2군을 통틀어 개인 한 경기 최다이닝, 최다 투구 수(95개)를 기록했다. 나균안은 "교체 후 마운드를 내려오는데 팬들의 환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잘 던졌구나'라며 뒤돌아볼 수 있었다"라고 흡족해했다. 나균안은 투수 전향이 1년도 되지 않았으나 6가지 구종을 던진다. 직구와 투심,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 체인지업까지 구사한다. 1일 키움전 7회말 1사 1루에서 서건창을 포크볼 3개로 3구 삼진을 잡아낸 장면이 압권이었다. 여기에 제구력까지 갖췄다. 올 시즌 1~2군에서 총 34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볼넷은 9개에 그쳤고, 탈삼진은 26개를 기록하고 있다. 팬들은 나균안과 '컨트롤의 마법사' 그레그 매덕스의 이름을 결합해 벌써 그를 '나덕스'라고 부른다. 그는 "'나덕스'라는 별명은 처음 들어본다"며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팬들은 물론 동료들도 마운드를 내려온 그에게 "우리 팀 1선발 같다"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가족의 존재는 그에게 힘이 된다. 나균안은 "투수 전환 때 부모님이 굉장히 아쉬워하셨다. 부모님 생각이 나 갑자기 울컥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김예은 씨와 결혼한 나균안은 "내가 힘들고 방황할 때 아내가 힘이 되어줬다. 장인어른-장모님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내가 (야구를) 잘하는 것 같다"라고 고마워했다. 또한 성민규 단장은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나균안은 구단, 팬들에게 약속했다. "이제는 포수 유망주가 아닌 투수 유망주입니다. 투수로 도움이 되겠습니다." 고척=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oongang.co.kr 2021.06.03 05:31
야구

[IS 돋보기] 단장·감독부터 베테랑·유망주까지…2020년을 기다린 쥐띠들

경자년이 밝았다. 2020년은 '쥐의 해'다. KBO 리그에서도 여러 쥐띠 스타들이 올 시즌을 자신의 해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1972년생 올해는 처음 프로야구 사령탑에 오른 쥐띠 감독이 두 명이나 있다. 허삼영 삼성 감독과 허문회 롯데 감독이다. 지난해 삼성은 8위, 롯데는 10위였다. 감독이 교체된 배경이다. 운영팀장 출신인 허삼영 감독은 프런트와 원활하게 교감할 수 있는 인물이다. 장정석 전 키움 감독이 임기 3년간 두 차례나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끈 성공사례도 있다. 다만 독립된 야구기업인 키움과 거대한 모기업을 둔 원년 구단 삼성은 팀 컬러와 운영방식이 모두 다르다. 마무리 투수 오승환의 복귀가 천군만마다. 허문회 감독은 키움 타격코치 시절부터 선수들에게 인기가 많은 지도자였다. 현역 때나 은퇴 이후에나 모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은 없지만, 꾸준히 공부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로 유명했다. 최악의 한 해를 보낸 뒤 근본부터 체질개선을 꾀하고 있는 롯데에서 더그아웃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민철 한화 단장도 쥐띠다. 한화 영구결번 레전드 출신인 정 단장은 5년 간 해설위원을 하다 지난해 말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한화는 2017년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지난해 다시 9위까지 내려 앉았다. 구원 투수로 정 단장을 선택했다. 스마트하고 시야가 넓어 단장 역할에 어울린다는 평가다. ◈1984년생 1984년 쥐띠 선수들은 이제 30대 후반으로 향하는 베테랑들이다. 현역 생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더 구슬땀을 흘려야 하는 시기다. 롯데 투수 노경은에게는 올해가 진짜 '새출발'의 시즌이다. 지난 1년간 소속팀을 찾지 못해 방황하다 결국 친정팀 롯데에 다시 둥지를 틀고 재기를 노린다. 마운드가 약한 롯데 전력에 보탬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LG 투수 송은범은 원 소속팀와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맺고 2년 더 줄무늬 유니폼을 입는다. 2년 총액 10억원에 일찌감치 사인하고 몸 만들기에 돌입했다. KT 베테랑 내야수 박경수는 지난해 137경기에 나섰지만 타격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LG 출신이지만 KT 프랜차이즈스타로 인식되는 그는 지난해 아쉽게 실패한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칼을 갈고 있다. 한화에서 FA가 된 이성열은 아직 계약을 하지 않았다. 성공적으로 사인을 한 뒤 올해 홈런 20개를 더 치면 통산 홈런 200개를 채울 수 있다. 지난 시즌에도 홈런 21개를 쳤다. 이 외에도 한화 투수 안영명과 현재 원 소속팀 한화와 FA 협상을 하고 있는 투수 윤규진도 1984년생 쥐띠다. 2018년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하는 마지막 공을 받았던 포수 허도환은 지난해 말 트레이드를 통해 KT로 옮겼다. 벌써 프로 다섯 번째 소속팀. 올해 마지막 기회에 도전해야 한다. ◈1996년생 쥐띠들 가운데 가장 어린 1996년생 가운데선 KT 배제성과 KIA 전상현이 가장 눈에 띄는 재목이다. 배제성은 지난해 이강철 감독이 마음 먹고 풀타임 선발 투수로 키워낸 영 건이다. 프로 입단 후 3년간 단 1승도 올리지 못했지만, 지난 시즌에는 28경기에 나서 10승 고지를 밟았다. KT 창단 이후 첫 국내 투수의 10승이다. 평균자책점도 3.76으로 준수했다. 에이스를 찾느라 늘 고생했던 팀에 큰 기대를 안겼고, 올해 한 단계 더 도약하기를 꿈꾸고 있다. 전상현은 지난해 신인왕 후보로 거론됐을 만큼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지난해 처음으로 풀타임 시즌을 치르면서 KIA 불펜의 필승조로 자리 잡았다. 57경기에서 60⅔이닝을 던지면서 1승 15홀드, 평균자책점 3.12를 기록했다. 상무에서 군복무까지 마친 터라 앞으로 꾸준히 KIA 마운드의 핵으로 자리잡는 일만 남았다. SK 왼손 불펜 김택형은 지난 시즌 도중 팔꿈치 통증으로 주춤했지만, 올해 정상적으로 팀에 복귀해 불펜에서 중책을 맡게 된다. 염경엽 감독이 키움 시절부터 눈여겨 보고 있는 투수다. 늘 KT 마운드에서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정성곤과 엄상백도 배제성과 같은 나이다. 이들이 올해 더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야 KT 마운드도 숨통이 트인다. 올해 포스트시즌에 깜짝 활약을 보여준 키움 내야수 김웅빈도 올해는 1군 풀타임 선수로 자리 잡아야 하는 시즌이다. 이 외에도 경찰야구단 군복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키움 외야수 송우현은 호주 질롱 코리아에서 뛰면서 올 시즌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송우현의 아버지는 KBO 리그 역대 최다승 투수인 송진우 한화 코치다. 뉴욕 양키스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박효준도 올해 다시 한 번 메이저리그 콜업의 꿈을 향해 달린다. 배영은 기자 2020.01.01 16:41
야구

[IS 인터뷰] '이젠 삼성맨' 김동엽 "잘하고 싶은 마음 뿐"

외야수 김동엽(삼성)이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김동엽은 사연이 꽤 많은 선수다. 천안북중을 졸업한 뒤 일본 미야자키 나치난학원으로 2년간 ‘야구 유학’을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와 천안북일고를 졸업했고, 2009년 3월에는 시카고 컵스와 계약하며 태평양을 건넜다.그러나 빅리거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2013년 6월 귀국했다. 미국 진출 이후 받은 오른어깨 슬랩 수술 여파로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고, 경기도 용인 서천중학교에서 행정 업무를 보며 '2년 유예기간'을 채웠다. 이어 2015년 8월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9라운드 SK 지명(전체 86순위)을 받고 KBO 리그에 발을 내디뎠다.출발은 '미생'에 가까웠다. 지명 순위에서 알 수 있듯이 기대가 높지 않았다. 그러나 2016년 타율 0.336(143타수 48안타)로 가능성을 보이더니 지난해 홈런 22개를 때려 냈다. 올 시즌에는 타율과 출루율에서 아쉬움을 남겼지만 홈런 27개를 기록했다. 잠실구장에서 장외홈런을 터뜨릴 정도로 힘 하나는 장사였다. 지난 7일 단행된 삼각 트레이드에 포함돼 삼성 유니폼을 입게 됐다. 2018시즌 팀 홈런 9위에 머문 삼성은 장타자가 부족한 팀 상황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카드로 김동엽을 선택했다. 그는 "정말 잘하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 팀을 옮기는 소감은."소식을 듣고 얼떨떨했다. 뭐랄까, 머리가 띵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곧 가라앉았다. 손차훈 단장님과 염경엽 감독님께서 '너한테 기회가 될 거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예상하지 못했나."트레이드하기 전날, 단장님께서 늦은 시간에 만나자고 하시더라. 낌새가 없었다. 다만, 연봉 협상을 하려고 늦은 시간에 카페에서 보자고 하는 건 아닐 듯해서 그런 내용(트레이드)을 전달하는 것밖에 없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으면 놀랐을 텐데 언질을 주셨다."- 이제 새 출발을 앞두게 됐다."설렌다. 다른 팀에 간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조금 우울했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으니까 (앞으로) 기대된다. 삼성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 김한수 감독님도 전화 통화에서 '야구는 어디서 하나 똑같다'며 몸을 잘 만들어서 잘해 보자고 좋은 말씀을 해 주셨다." - 삼성에선 지명타자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타격 성적이 올라갈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 믿고 써 주신다면 거기에 맞는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 여러 가지 의미로 내게 좋은 방향으로 판이 깔린 것 같다."- 직접 뛰어 본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는 어땠나."괜찮았다. 공도 잘 보였고 좋게 생각했다. 빨리 내년 시즌이 왔으면 좋겠다. 삼성 유니폼을 처음 입을 때가 기대된다. 강민호 선배도 직접 전화를 주셔서 '열심히 잘해 보자'고 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 정말 잘하고 싶다."- 시즌 이후 마무리 훈련까지 다녀왔는데."수비 훈련에 집중했다. 열심히 하면서 자신감을 찾은 보람찬 훈련이었다. 그래서 (마무리 훈련까지 잘 마친 상황에서) 트레이드 소식을 들고 조금 방황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받은 어깨 수술 여파로 송구할 때 아쉬운 장면을 보여 주기도 했는데."마무리 훈련에서 많이 던지고 왔다. 마음이 편하니까 공도 잘 날아가더라. 코치님들도 좋다고 할 정도로 자신감 있게 하고 왔다.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깨가 아플 수 있다는) 심리적 부분이 큰데, 자신감은 찾았다."- SK에서 '선수' 김동엽이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처음 입단했을 때 정말 쟁쟁한 외야수가 많았다. 조동화 코치님과 박재상 코치님, (김)강민이 형 (정)의윤이 형 (이)명기 형 등 그때 솔직히 암울했다. 그런데 경쟁을 통해 1군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성장의 바탕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작년에도 시즌을 시작할 때 외야수가 많으니까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올해도 마찬가지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tbc.co.kr 2018.12.12 06:00
브랜드미디어
모아보기
이코노미스트
이데일리
마켓in
팜이데일리
행사&비즈니스
TOP